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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위 - 방글라데시판 삼풍백화점 참사

 

방글라데시는 세계 2위의 의류 수출국으로 많은 사람이 의류업에 종사하고 있다. 2013년 4월 24일 오전 8시 45분 방글라데시의 수도인 다카의 한 의류 공장이 있는 라나플라자, 그 곳에 출근한 3,122명의 노동자들, 그런데 갑자기 8층짜리 건물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며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정부의 공식 집계 추산에 따르면 무려 1,134명이 사망했다. 역대 최악의 산업재해로 기록된 라나플라자 의류 공장 붕괴 사고에 전세계가 큰 충격에 빠졌다. 그런데 이 대참사는 무엇보다 분명 막을수 있던 사고 였기 때문에 더 가슴 아픈 비극이 아닐수 없다.

 

 

 

사실 사고가 난 라나플라자는 건물자체가 무허가 건물이었다. 돈에 눈이 먼 건물주의 욕심으로 5층짜리 건물에 무려 3개 층을 무리하게 증축한 것이다. 심지어 사고 당시에 한층을 더 올리는 공사가 진행중이었다고 한다. 무허가 건물에 부실공사 그리고 불법증축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게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정말 어이없는 일은 건물주는 이미 사고 위험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고 이전에 건물 내부에 금이 가는 등 분명한 이상 징후가 있었고, 이에 건물 관리자들이 건물이 위험하다며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한다는 경고를 수차례 했지만 건물주는 이를 무시했다. 심지어 사고 당일에는 경찰까지와서 대피 명령을 내렸음에도 이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던 것이다.

 

사고가 발생하자 건물주는 인도로 도피를 계획하다 경찰에 붙잡혔지만 이후 부패 혐의로 고작 징역 3년을 선고 받았다. 살인혐의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제대로 재판이 진행되지 않아 국민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고 한다. 욕심에 눈이 먼 인간이 만들어낸 비극, 부디 사람이 먼저라는 것을 절대 잊지 않기를 바란다.

 

 

 

4위 - 체르노빌 참사, 끝나지 않은 재앙 

 

33년전 우크라이나 중북부 도시 체르노빌에서 발생한 전대미문의 재앙, 참혹한 그 날로 돌아가 보겠다. 구소련이 지배하던 체르노빌에 원자력 발전소가 들어섰는데 1986년 4월 26일 실험도중 한 연구원의 조작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한다. 당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4기의 원자로를 동시에 가동하던 중 4호기가 폭발한 것이다. 폭발 약 4분만에 소방관 10여명이 현장에 도착 뒤이어 지원요청을 받은 발전소 직원과 소방대원 약 1000여명은 거대한 불길을 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33년이 지난 현재도 복구 되지 못하는 체르노빌

 

그런데 당국에 조치라고는 무려 36시간이나 지난 뒤에야 인근 주민 5만명에게 임시로 대피명령을 내린 정도였다. 심지어 사고 4일뒤인 4월 30일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노동절 퍼레이드가 진행되기도 하였다. 당시 이곳에는 약 50만명이 모인것으로 추정이 되는데 정부에서는 그 어떤 경고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냉전 상태였던 소련과 미국, 국가의 위신이 걸린일이었기에 최고 지도자 였던 고르바초프는 주민들 패닉을 막기 위해서였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이 대참사를 은폐했다. 하지만 방사능의 재앙은 스웨덴의 과학자들에 의해 곧 전세계에 밝혀졌다. 이후 죽음에 재라고 불리는 방사능 낙진이 유럽전역에 출연하기도 했다. 사고 이후 무려 6개월만에 응급처치로 콘크리트 방호벽을 세웠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공포, 방사능의 재앙은 계속 이어졌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사고 발생 5년뒤인 1991년 4월 22일 당시 소련정부가 대외적으로 인정한 사망자수는 원전 직원 2명, 소방대원 29명, 단 31명 뿐이었다.

 

하지만 1994년 이후 우크라이나에서는 암과 백혈병 환자가 급증을 했고 또 2006년 세계 보건기구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원전인구 30km 이내 주민과 사고 수습에 투입된 총인력 약 60만명중 무려 4,000여명이 사망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꺼지지 않는 불 원자력, 인류에게 재앙을 부를 수 있는 이 판도라가 절대로 열리지 않도록 반드시 지켜내야 할 것이다.

 

 

 

3위 - 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의 눈물'

 

2011년 3월 11일 일본 관측사상 최대인 진도 9.0의 지진이 발생했다. 동일본 대지진과 더불어 거대한 쓰나미가 일어 후쿠시마 제1원전이 수소 폭발과 함께 방사능이 대거 유출되며 후쿠시마는 삽시간에 폐허가 되어버렸다. 당시 일본 내각 총리 대신은 사실상 일본 국토의 20%를 잃은것이나 다름 없다 라며 참혹한 심경을 표현했다. 하지만 일본정부의 대처는 30여년전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떠올리게 했다.

 

 

당시 후쿠시마 원전을 운영한 도쿄전력 직원들은 주민들에게는 알리지 않은채 원전 부근에 있던 자기 직원들과 가족들을 가장 먼저 대피시켰다. 즉, 영문을 모르던 주민들만 방사능에 무방비로 노출된 것이다. 또 일본정부는 꾸준히 오염물질 제거 작업을 진행하며 사고 수습이 많이 진행되었다고 발표했지만 재염작업을 통해 발생한 방사능 쓰레기는 후쿠시마 곳곳에 산처럼 쌓여있다. 이는 무려 900만m2, 거의 여의도 면적의 3배 수준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베총리의 입장은 단 하나이다. 후쿠시마는 안전하다는 것이다. 중의원 선거 유세중에는 후쿠시마산 쌀로 만든 주먹밥을 시식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한편 우리 정부는 원전 사고 직후 후쿠시마 인근 지역의 농수산물 수입을 금지하는 특별 조치를 단행했다. 하지만 일본은 이런 수입금지 조치가 부당하다며 WTO에 재소하였고 1심에서는 일본에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얼마전 4월 11일 일 수산물 수입금지는 정당하다며 최종심에서 우리나라가 승소하였다. 한편 아베 정권은 2017년 12월 안전이 확인된 원전에 대해 재가동 허가를 내줬다고 한다. 이 결정에 일본 국민들은 아직 사고는 수습되지 않았다 라며 제 2의 후쿠시마 재앙을 막기 위해 시위를 벌이고 있다. 

 

 

 

2위 - 참혹 실화, 쿠르스크함 침몰 사건

 

러시아 쿠르스크 잠수함에 갇혀있던 한 대위의 마지막 유언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감각만으로 쓴다. 살 가망은 없을 것이다. 모두에게 안부를... 절망할 필요없다'

쿠르스크 함은 구소련이 미 항공모함을 공격하기 위해 만든 핵 잠수함이다. 견고한 내부구조를 갖춰 가라앉지 않는 잠수함으로 불리었다. 그런데 그 신화는 2000년 8월 12일에 산산조각 나고 만다. 당시 쿠르스크함은 노르웨이 바렌츠해에서 군사훈련중이었다. 그런데 오전 11시 29분쯤 갑자기 잠수함 앞머리인 함수 내부에서 훈련용 병기인 어뢰 연료에 문제가 생기면서 어뢰가 폭발, 이때 부터 시작된 대재앙은 시작된다. 선체에는 무려 2 제곱미터의 구멍이 뚫린다. 초당 9만리터의 해수가 유입되자 쿠르스크함은 통제력을 상실한다. 그리고 108m 해저로 점점 가라앉고 만다.

 

 

 

이 사고는 예견된 사고였다. 당시 쿠르스크 함에 장착된 어뢰는 훈련에 사용된 뒤 보수되지 않은 구형이었다. 폭발 위험이 있는 어뢰실도 안전문으로 분리되지 않은 부실 설계의 산물 그 자체였다. 그런데 폭발 당시 전체 승조원 118명 중에 약 23명은 생존한 상태였다. 하지만 폭발 후 잠수함속에는 계속 물이 차올랐고 산소도 점점 부족해져갔다. 이들은 죽음의 경계에 직면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 때 영국을 비롯해 인근 해역의 주변국에서 돕겠다며 구조의 손길을 내밀었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는 군사기밀등의 보안을 이유로 완강히 이를 거부한다. 러시아 구조대가 8일이 지난 8월 20일에 가라앉은 잠수함에 접근했을때는 안타깝게도 승조원 118명이 모두 질식해 사망한 상태였다.

 

 

 

1위 - 인류 최악의 재앙 911 테러

 

2001년 9월 11일 이날은 미국인들 뿐만 아니라 전세계인들에게 가장 슬프고 아픈날이다. 바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오사마 빈라덴과 알카에다가 벌인 미국 대폭발 테러 사건인 911 테러가 있던 날이다. 4대의 항공기를 납치 후 벌어진 동시다발적인 테러로 미국경제의 상징인 세계 무역센터가 붕괴되었다. 그리고 미국 국방부인 펜타곤 역시 큰 타격을 입은 것은 물론 당시 미국의 심장부인 뉴욕이 공격 받았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제2의 진주만 사태라며 큰 충격에 빠졌다.

 

 

그리고 이 인류 최악의 비극에서 절대 잊어서는 안될 이들도 있다. 바로 테러 당시 목숨을 바쳐 구조 하다 희생된 412명의 소방관과 결창들을 비롯해 수많은 시민 영웅들이다. 유명 M금융그룹 보안 직원 릭 레스콜라는 테러직후 건물을 돌아다니며 직원들의 대피를 도왔다. 사람들이 다 탈출하면 그 때 나갈게 라는 말을 남기고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한 뒤 안타깝게도 그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 됐다. 또한 테러범에게 납치됐던 U항공 93편의 승객들은 더 큰 테러를 막기 위해 힘을 합쳐 온 몸으로 저지하다 결국 테러범들과 함께 펜실베이니아 주의 한 평야에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무고한 죽음을 당한 이들 그리고 숭고한 희생정신을 보여준 영웅들까지, 그들을 잊지 않기 위해 미국 국민들은 사고 후 약 1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테러의 현장에서 이제는 추모 공간이 된 그라운드 제로를 찾아 그 날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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